도자기

  서하는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소수민족 정권이며 역사의 근 190 년이래 모두 영하 은천시에 건설되었다. 몽골군의 대군의 파멸로, 서하 문화 유적 ,유물 ,예술 등이 극소수 보존되고 있다 .이 오래된 왕조에게 너무 많은 수수께끼를 남겼고, 서하자는 물증이 너무 적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기 역사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다 .

  최근 몇년동안 닝하, 감숙, 내몽골 등 서하자의 발굴 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국내외에 서하자의 소장이 뜨거워지고 서하자들도 ‘ 깊은 규방 ’ 을 벗어나 그 미스터리한 역사를 전시하기 시작했다.

 

  당항인이 건설한 서하문명이 돌연적으로 소실되는 원인으로 후인들의 서하 자기의 연구는 어려운 과정에 진입하였다.1956년 네이멍구 자치구 이금호에서 진귀한 검은 유약의 흔적 두점을 발견한 되었는데 원조시대에 것으로 알려지고 후에는 서하와 관련된것으로 확정되었다 .1970∼80년대부터 닝샤, 칭하이(靑海), 간쑤(甘肅)성 등 서시청(西西城)의 강 역을 잇달아 서하 자기들이 발견되고, 고고학 전문가들은 서하 도자기, 송자기와 원자기를 구별하기 시작했다.

  서하자기는 서하문화의 주요한 구성부분으로써 중원의 주주거, 광주요의 영향을 받았으며 당항족의 문화습관을 결합하여 질좋고 민속특색이 있는 자기를 만들어냈다.각지에서 발굴덴 서하 자기로부터 보았을때 민족특색이 분명하고 디자인이 간결하고 장식이 기품있다. 가장특색있는 편호, 사대병, 고족 그릇, 고리 그릇, 그리고 타임리스 등 예술작품이 있으며 당항민족의 소박하고 순박한 민족성격을 보아낼수있으며 도자기의 디자인 내용을 더욱 풍부히 하였다 .

 

  편호 제품은 수량이 많고 제작이 아름다우며 서하이외 기타 자기에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서하자기중 제일 대표정있는 기기이다 . 편호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비교적 큰호는 권족편호, 호구가 작고 , 목이 짧으며 ,편폭이 동글고 , 호중성주, 물혹은 우유가 쉽게 흐리지 않는다 .

  또한 작은 류형의 편호의 형태는 큰편호랑 비교적 비슷한데 부칠권족,체태각 가볍고, 착용하면 몸에 휴대가 간편하고 실용적인것 이다. 크기가 납작할 뿐만아니라 디자인이 합리적이고 아름답다. 당항인들의 총명한 재능과 지혜를 구현했다.

  츠링,장꺼우는 서하 자기중 특수한 산품이다 또한 유목민 생활중에 필수품이다. 서하의 동,철광 상품이 희소한 원인으로 서하인은 특별이 츠링,장꺼우가 링거우 금속을 대체할뿐만 아니라 금속 제품이 없는 어려움을 해결하였고 또한 도자기 제조업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줬다.

  뉴터우쉰은 자기쉰의 일종이며 정면에는 두개의 구멍, 꼭대기에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미묘한 소리를 낼 수 있다. 뉴터우쉰은 일종 악기로서 초원민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있다. 그것의 출토는 서하인의 창신적 지혜를 표현했을 뿐만아니라 동시에 서북 유목민족의 아름다운 생활감정 세계를 표현하였다.

  서하자기의 젤 전형적인 특징은 도자기상의 꽃무늬이며 이런 자기는 서하자기중 젤 정밀한 일종이다 .

  서하 자기제조가 꽃공예 작업을 진행중에는 두개의 절차가 있다. 첫째는 꽃을 깎고 깎은 꽃은 평면우에다 그리는것이 아니라 바로 기계위에 올려놓으며 꽃무니의 도안의 윤곽을 칼로 깎아 그리는데 난이도가 아주 크다. 두번째는 첫번째 작업의 연속인데 바로 탈유작업이다 전체 표면우의 꽃도안과 무늬의 주위에 탈유하여 태체를 들어내게 한다 .

  서하 탈유화중의 가장 유명한 무늬는 바로 각양각색의 목단꽃이다 . 일부 수집가들의 소개에 따르면 당시 서하경내에는 이런 화훼가 없었으며 자기우에는 대량의 목단무늬역시 매우 난해한것으로 알려져있다.

 

  근년래 서하자기의 연구가 심오해짐에따라 서하의 신비로운 문화는 더욱 추구할만한것으로 여겨지며 국내 박물관에서는 더욱 서하의 자기에대하여 수집을하고 동시에 국내외 수집계에서는 서하자기를 수집하는 열풍이 일어났다.

  서하 고도자기 연합전시회는 북경,상해등 12개 성시에서 68명의 수집가가 신중히 골라서 거져온 200여개의 서하 도자기가 전시되었으며 오스트랄리아 , 아테네,이탈리아, 애급, 프랑스 등 여러나라의 여행객과 수집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그중 흔하지 않고 완정하게 보존된 청해와 녕하 수집가들의 전시한 갈색유 세개 광선 후지 모란무늬 큰 깡통과 갈색 유약을 발라내 잎을 감은 잎 모란 무늬 6 계 캔은 국보급 문물로 서하 도자기의 극품이다.

  녕하 소장의사회 상무에 ,서하 도자기 수집가 미샹군의 소개에 의하면 근년래 서하 도자기는 국내외 영향력이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고 하였다.한방면으로 개인 소집가가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으며 산시성,감숙성 녕하성등 성시에서만 관심을 가지던데로부터 지금은 북경, 상해, 광동등 지구의 수집가들도 수집력도를 강화하고 있는겄으로 알려지고있다,

  다른 방면으로는 국내 박물관도 녕하 해원현의 탈유 자기를 소집하고 있으며 일본, 프랑스, 로씨아등 국가 박물관에서도 서하 도자기를 수집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서하 도자기의 유적이 점차 적어짐으로 인해 출토가 흔하지 않고 많은 도자기 수집가들은 서하도자기를 수집하는것에 많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서하 자기의 연구가 이진흥의 말에 의하면 당항인은 홀장의 풍속이 있으며 극 소수부분이 땅에 묻는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매장중에서 발굴된 서하 도자기는 매우적다 . 목전 저하 진귀한 도자기중 탈유화 서하 자기의 저장수는 매우적으며 전세계에 고작 100여개에 달하고 매우 진귀하다고 한다 . 수량이 매우작은 연유로 서하 도자기중의 판매가는 100만위안에 달한다고 한다.

  일부 서하 도자기력사는 서하의 역사와도 맞먹는다 . 중국의 24시중 서하사는 없지만 중국도자기사에는 서하의 도자기사를 개입하지 않았다. 물증도 없는 문화는 허무하므로 사람들은 노력을 가해서 보물을 찾고 있으며 더욱더 서하 도자기력사에 대하여 알아가려고 하고 있다

  상세기 80년대로부터 즁보,회민항 감숙위우타얼완등 10개의 서하자기가 발굴되며 서하자기의 진면모를 보여주었다. 특별히 녕하 령우즁과 감숙 우위즁에서 출도한 대량의 보물들은 자기역사상 대내외 전문가들의 연구 샘플로 되면서 국내외 서하자기 문화 예술으 공백을 메꿈하였따.

  서하는 중국의 것이지만 서하학은 국외에것이다 . 서하문화 연구와 서하자기의 수집은 많은 국가 특별히 로씨아 , 일본, 미국등 나라에서 매우 중요시하며 많은 성과를 가져왔다 . 근녀래 우리나라에서도 서하 자기의 연구와 수집을 매우 중요시하며 서하 자기의 특수한 역사의 가치와 문화적 가치 발굴가치등을 인정하여 서하역사 문화 경제 젗이 군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되어잇다.

  예술과 디자인이부동함에 따라 남방 자기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갈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의 그것의 미와 탈유 문양디자인은 더욱 서하의 문자의 신비함을 보여주고 력사가치와 예술가치로 부터 보았을때 더욱 존귀한 민족 유물로 되었다 ,

  상세기초 국내외 탐함가들의 략탈로인해 서하의 많은 문헌과 자기는 로씨아 , 영국등 다른나라에로 류실되었으며 그들의 가지고 있는 장품의 수량은 국내의 수량을 초과하였다.근년래 국내에서도 해외로부터 서하의 자기를 사들이 기 시작하였으며 서하자기의 연구와 보호에 력도를 가하고있다. 근년래 향항상인이 미국친구로부터 수거해온 2건의 류실된 서하자기는 감숙성 위워이 서하박물관에 보관되고있다